정부가 골라준 소개팅 상대, ‘안정적 매칭’이면 행복할까요?
핵심 요약
- 게일–섀플리 알고리즘의 ‘안정’은 각자 지금의 상대보다 서로를 더 좋아하는 두 사람이 남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 기본 모형에서는 먼저 제안하는 집단에 유리한 안정적 매칭이 만들어집니다.
- 입력한 선호가 실제 마음과 다르면 계산 결과와 만남의 만족도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 정부 소개팅 서비스의 성과를 판단하려면 매칭 건수와 실제 만남의 경험을 함께 살펴야 합니다.
정부가 알고리즘으로 소개팅 상대를 골라준다면 더 믿음이 갈까요? 싱가포르 GovTech의 FirstDate를 ‘안정적 매칭’과 연결해 생각할 때는 먼저 안정이 무슨 뜻인지 짚어봐야 합니다. 오래가는 관계를 떠올리기 쉽지만, 수학에서 쓰는 안정은 조금 다른 뜻입니다.
‘안정적’이라는 말에 행복은 들어 있지 않습니다
게일–섀플리 알고리즘이 다루는 대표적인 문제를 ‘안정적 결혼 문제’라고 부릅니다. 이름에 결혼이 들어가기는 해도, 두 집단을 서로의 선호에 따라 짝짓는 문제입니다.
기본 모형은 단순합니다. 두 집단의 인원수는 같고, 모든 참가자는 상대 집단의 모든 사람에게 동률 없이 선호 순위를 매깁니다.
어떤 경우에 안정성이 깨지는지 보겠습니다. 민수와 지연이 각각 다른 사람과 짝이 됐다고 해보죠. 그런데 민수는 지금의 상대보다 지연을 더 좋아하고, 지연도 지금의 상대보다 민수를 더 좋아합니다.
이 두 사람은 기존 매칭을 떠나 서로를 선택할 이유가 있습니다. 이렇게 각자 지금의 상대보다 서로를 더 선호하는 두 사람을 ‘블로킹 페어’라고 합니다. 안정적 매칭은 이런 조합이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따라서 안정적이라고 해서 “모두가 첫 번째로 원하는 상대를 만났다”는 뜻은 아닙니다. 누군가 선호 순위가 낮은 상대와 짝이 되더라도 전체 매칭은 안정적일 수 있습니다. 관계에 얼마나 만족하는지, 얼마나 오래 만나는지도 이 정의와는 별개입니다.
누가 먼저 제안하느냐도 결과를 바꿉니다
알고리즘의 작동 방식은 어렵지 않습니다. 한쪽 집단의 참가자들이 자신이 가장 선호하는 상대에게 먼저 제안합니다.
제안을 받은 사람은 그중 가장 마음에 드는 후보를 일단 남겨두고 나머지는 거절합니다. 거절당한 사람은 아직 제안하지 않은 후보 중에서 다음으로 선호하는 상대에게 제안합니다.
더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 제안을 받으면 잠정 상대를 바꿀 수 있습니다. 이 과정을 반복하다가 더 이상 새로운 제안이 필요하지 않으면 매칭이 끝납니다. 앞서 설명한 기본 조건에서는 이렇게 안정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이 알고리즘에는 제안하는 쪽에 유리하다는 성질이 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같은 선호 목록으로 만들 수 있는 여러 안정적 매칭 가운데 제안하는 집단의 각 참가자가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상대를 얻습니다. 모든 참가자가 첫 번째로 원하는 상대와 짝이 된다는 말은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안정적 매칭이 가능한 범위 안에서’ 가장 유리하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서비스를 설계할 때는 누가 제안하는 역할을 맡을지 정해야 합니다. 화면에는 똑같이 ‘매칭 완료’라고 나오더라도, 어떤 규칙을 적용했느냐에 따라 참가자가 얻는 결과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프로필의 순위와 만나본 뒤의 마음은 다릅니다
수학 문제에서는 선호 목록이 이미 주어져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 소개팅에서는 그 목록을 만드는 일부터 쉽지 않습니다.
나이와 취미, 거주지만 보고 사람의 순위를 정할 수 있을까요? 프로필을 볼 때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사람이 대화를 나누고 나니 가장 궁금해질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조건이 잘 맞아도 막상 만나면 어색할 수 있습니다.
알고리즘은 입력된 선호를 바탕으로 계산합니다. 거기에 담기지 않은 호감까지 보장할 수는 없습니다.
설문이나 행동 기록으로 선호를 추정한다면 추정한 선호가 실제 마음과 얼마나 맞느냐도 따져봐야 합니다. 매칭 알고리즘이 수학적으로 정확하게 작동하더라도, 처음에 선호를 잘못 짚었다면 기대와 다른 상대를 추천할 수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마음이 달라지기도 합니다. 오늘의 선호 목록에서 안정적이었던 조합이 다음 달의 선호 목록에서도 안정적이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안정적 결혼 문제’라는 이름만 보고 관계가 오래갈 것이라고 기대해서는 안 되는 이유입니다.
정부가 주선한다면, 무엇으로 성공을 판단할까요?
정부 소개팅 서비스라면 모든 참가자의 짝을 정해주는 것만으로 목표를 다 이뤘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참가자가 만나볼 만한 사람을 소개받았는지도 살펴야 합니다.
저라면 매칭 건수를 확인한 다음에는 서로 다시 만나고 싶었는지를 보겠습니다. 한쪽만 만족한 만남과 두 사람 모두 다음 약속을 원한 만남은 결과가 다르니까요. 참가자가 원치 않는 소개를 쉽게 거절할 수 있었는지도 평가할 때 빼놓을 수 없습니다.
매칭 규칙도 설명해야 합니다. 어떤 선호를 반영하는지, 어느 쪽이 제안하는 역할을 맡는지 알아야 참가자도 결과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정부가 운영하니 믿을 만하다는 이유만으로 개별 매칭의 품질까지 입증되는 것은 아닙니다.
FirstDate 같은 구상에는 사람들이 만날 기회를 마련해주는 역할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알고리즘이 서로를 발견하도록 도울 수는 있어도, 관계를 이어갈 이유는 두 사람이 직접 만나면서 찾아야 합니다.
안정적 매칭은 정해진 수학적 문제를 풀어주는 도구입니다. 그 결과가 행복한 관계로 이어지는지는 따로 확인해야 합니다. 정부 소개팅 서비스에 조건에 맞는 상대를 소개받길 바랄 수도 있고, 프로필만 봐서는 선택하지 않았을 사람을 만나볼 기회를 기대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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