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스의 NeXT를 살린 건 CIA 돈이었다는 이야기
스티브 잡스가 애플에서 쫓겨난 뒤 차린 회사 NeXT는 상업적으로 처참하게 망했습니다. 5년 넘게 하드웨어를 팔았는데 다 합쳐 5만 대 남짓 나갔죠. 그런 회사가 어떻게 그 긴 세월을 버텼을까요. 요즘 이 질문이 다시 나옵니다. 답의 일부가 정보기관 예산이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미리 하나 털어놓겠습니다. 이번 주제는 커뮤니티 데이터가 거의 안 잡혔습니다. 최근 30일 안에 올라온 관련 스레드를 못 찾았고 보도의 세부 내용도 제가 원문으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글은 “이 주장이 사실이다"가 아니라 “이 주장이 왜 이렇게 그럴듯하게 들리는가” 쪽을 파보겠습니다. 실리콘밸리와 국가 자본의 관계는 이 보도와 상관없이 이미 기록이 쌓일 대로 쌓인 역사거든요.
NeXT는 애초에 수지가 맞지 않는 회사였습니다
NeXT 컴퓨터는 1988년 출시 당시 6,500달러였습니다. 지금 돈으로 환산하면 1,700만 원이 넘습니다. 대학 연구실을 겨냥했다지만 그 값에 팔릴 물건은 아니었죠. 프레몬트에 지은 자동화 공장은 한 달에 1만 대를 찍어낼 수 있었는데 실제로는 400대쯤 만들었습니다. 가동률 4%였다는 뜻입니다.
이런 회사가 1985년부터 1996년 애플에 인수될 때까지 11년을 버텼습니다. 알려진 자금줄은 잡스 개인 자산 700만 달러, 로스 페로의 2,000만 달러, 캐논의 1억 달러입니다. 그러고도 1993년에 하드웨어 사업을 접고 소프트웨어 회사로 쪼그라들었습니다. 직원도 절반 넘게 잘랐고요.
여기서 늘 빈칸이 하나 남습니다. 그 워크스테이션이 실제로 어디로 갔느냐는 겁니다. 대학과 금융권이 주요 고객이었다지만, 당시 고성능 유닉스 워크스테이션의 큰손이 정부 기관이라는 건 업계에서 상식에 가까웠습니다.
실리콘밸리는 원래 국방비로 자란 동네입니다
이건 논쟁거리도 아닙니다. 실리콘밸리라는 이름이 붙기 전부터 이 동네 산업의 뼈대는 군수 계약이었습니다.
휴렛팩커드의 초기 성장은 2차대전 군용 계측기 수요가 만들었습니다. 페어차일드 반도체의 첫 대형 고객은 미니트맨 미사일 유도 시스템이었고요. 1960년대 중반에 미국에서 나온 집적회로는 상당량을 국방부와 NASA가 사갔습니다. 민간 시장이 없던 시절, 값을 따지지 않고 최신 칩을 사줄 고객은 정부뿐이었습니다.
인터넷의 조상인 ARPANET은 국방고등연구계획국이 만들었습니다. GPS도 군용이었죠. 아이폰의 터치스크린, 음성인식, 리튬이온 배터리 연구도 상당 부분 공공 자금이 초기 리스크를 떠안았습니다. 경제학자 마리아나 마추카토가 “기업가형 국가”라는 말로 정리한 게 이 얘기입니다.
정보기관은 아예 벤처캐피털을 차렸습니다
1999년 CIA는 인큐텔이라는 벤처캐피털을 세웠습니다. 음모론이 아니라 공식 조직입니다. 홈페이지가 있고 포트폴리오도 공개합니다.
인큐텔이 일찌감치 돈을 넣은 회사 가운데 키홀이 있습니다. 위성 지도 스타트업이었는데 2004년 구글이 인수해 구글 어스가 됐습니다. 팔란티어의 초기 투자자 명단에도 인큐텔이 있고요. 데이터베이스, 자연어 처리, 생체인식, 위성 영상 쪽으로 200개 넘는 회사가 돈을 받았습니다.
방식이 영리합니다. 정보기관이 직접 기술을 개발하는 대신 민간 스타트업에 돈을 넣고 그 기술을 나중에 사들입니다. 스타트업 장부에는 “정부 계약"이 아니라 “벤처 투자"로 남고요. 회계도 깔끔하고 언론에도 덜 걸립니다. 1980년대에 비슷한 일이 있었다면 지금보다 훨씬 추적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지금 AI 랩에서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가 40년 전 잡스의 뒷돈으로만 끝나면 그냥 흥미로운 야사입니다. 문제는 지금입니다.
2024년부터 주요 AI 기업이 국방·정보 계약을 잇달아 따냈습니다. 오픈AI는 군사 이용을 금지하던 사용정책 문구를 슬그머니 고쳤습니다. 앤스로픽은 팔란티어, AWS와 함께 기밀 환경에 클로드를 배치하는 협약을 발표했고요. 메타는 라마를 국방 목적으로 쓰는 걸 허용했습니다. 2025년에는 미 국방부가 여러 AI 기업과 각각 2억 달러 규모의 계약을 맺었습니다.
한쪽에서는 “AI 학습에 수십억 달러가 든다"고 합니다. 다른 쪽에서는 돈을 꾸준히 써줄 고객이 나타났고요. 40년 전 페어차일드가 미사일에 칩을 팔던 구조와 모양이 같습니다. 민간 시장이 감당 못 하는 초기 비용을, 성능만 나오면 값을 안 따지는 고객이 대신 떠받치는 겁니다.
그래서 무엇을 다르게 봐야 할까요
저는 이걸 “실리콘밸리가 사실은 스파이 소굴이었다"는 식으로 읽는 건 게으르다고 봅니다. 더 정확하게는 이렇습니다. 차고에서 시작한 천재 창업자라는 서사가 돈의 출처를 지우는 장치로 오래 작동해왔다는 얘기죠.
잡스의 NeXT 이야기가 사실이든 아니든, 확인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것 자체가 이 판의 성격을 말해줍니다. 40년 전 일인 데다 그 구조는 애초에 추적당하지 않으려고 짠 것이니까요. 반면 지금 AI 기업의 국방 계약은 공개돼 있습니다. 계약 금액도, 정책을 언제 바꿨는지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질문은 지금 해야 맞습니다. 40년 뒤에 “그때 그 AI 회사들, 사실 누구 돈으로 돌아갔던 거지?“라는 기사가 나온 다음이 아니라요. 지금 여러분이 쓰는 AI 도구의 다음 버전은 누구를 만족시키려고 설계되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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