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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I를 가장 확신했던 펀드가 무너졌다 — 150억 달러 손실이 말해주는 'AI 트레이드'의 민낯

이 주제로 커뮤니티를 한참 뒤졌습니다. 최근 30일간 이 사안을 직접 다룬 레딧 스레드도, 믿을 만한 토론도 못 찾았습니다. 손실 규모가 확정된 사건이라고 말할 근거가 저한테는 없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어느 펀드가 얼마를 잃었는지 확인해드리는 글이 못 됩니다. 대신 “AGI 트레이드"가 왜 구조적으로 이런 결말로 굴러가는지를 이야기하겠습니다. 숫자 보러 오신 분께는 미리 죄송합니다.

‘AI 트레이드’ 안에는 베팅이 여러 개 섞여 있습니다

다들 “AI에 투자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 한마디 안에 성격이 전혀 다른 베팅이 뭉쳐 있습니다.

하나는 연산 수요입니다. GPU와 데이터센터, 전력 인프라가 계속 팔린다는 쪽에 거는 겁니다. 다음은 모델 능력, 즉 차세대 모델이 지금보다 확실히 똑똑해진다는 전제입니다. 마지막이 수익화입니다. 그 똑똑함이 기업 매출로 바뀐다는 가정이죠.

이 셋이 같은 속도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연산 수요는 이미 실현됐고 모델 능력도 꾸준히 올라갔습니다. 수익화만 한참 뒤처집니다. 시차는 여기서 벌어집니다.

확신이 강할수록 포지션은 한쪽으로 쏠립니다

레오폴드 아셴브레너의 「Situational Awareness」는 2024년 공개된 뒤로 AI 업계에서 손꼽히게 많이 인용되는 문서가 됐습니다. 2027년경 AGI, 그 뒤 급격한 지능 폭발. 서사가 선명하고 숫자까지 붙어 있습니다. 결정적으로 이 문서는 행동 지침을 줍니다. 믿는다면 무엇을 사야 하는지가 저절로 정해지거든요.

선명한 서사는 투자에서 오히려 위험합니다. 확신이 커지면 레버리지를 키우고 헤지를 줄입니다. “이건 확실하니까 굳이 반대편을 사둘 필요가 없다"는 판단이 한 번 들어가면, 포트폴리오는 시나리오 하나에 통째로 걸립니다.

같은 문서를 읽은 사람들이 같은 종목을 삽니다. 시장에서는 이걸 크라우디드 트레이드라고 부릅니다. 들어갈 때는 문이 넓어 보입니다. 나올 때 좁아집니다.

타이밍이 틀리면 방향이 맞아도 죽습니다

AGI가 결국 온다고 칩시다. 그래도 손실은 납니다.

레버리지를 쓴 포지션에는 마진콜이라는 시계가 달려 있습니다. 최종 방향이 맞아도 중간에 20~30% 조정이 오면 강제로 청산당합니다. 그 뒤 주가가 회복하든 말든 그 수익은 내 것이 아닙니다. 케인스가 남긴 말이 정확합니다. “시장은 당신이 지급 능력을 유지할 수 있는 기간보다 더 오래 비합리적일 수 있다.”

2000년 닷컴 버블이 그랬습니다. “인터넷이 세상을 바꾼다"는 명제는 100% 맞았습니다. 그 명제를 믿고 1999년에 레버리지를 최대로 당긴 사람들은 2002년에 사라졌습니다. 명제가 맞는 것과 수익이 나는 건 따로입니다.

시장이 무서워하는 건 하락이 아니라 ‘재계산’입니다

AI 관련 자산의 밸류에이션에는 미래 현금흐름이 미리 반영돼 있습니다. 그 현금흐름을 언제로 잡느냐, 즉 시점 가정이 여기서 할인율 역할을 합니다.

AGI가 2027년에 온다고 놓으면 지금 밸류에이션이 설명됩니다. 2032년으로 밀면요? 명제는 그대로인데 현재가치가 크게 깎입니다. 시장이 무너지는 데 “AI는 사기였다"는 폭로가 필요하지는 않습니다. “생각보다 3년쯤 늦겠는데"라는 조용한 수정으로 충분합니다.

그 수정은 보통 아주 밋밋한 데서 시작됩니다. 어느 기업의 AI 도입 예산이 다음 분기로 미뤄졌다는 실적 발표 한 줄. 그런 걸로 시작됩니다.

개인 투자자에게 남는 문제

거대 펀드 얘기처럼 들리지만 개인 계좌에도 그대로 옮겨붙습니다.

서사가 설득력 있느냐와 그 서사에 얼마를 걸어야 하느냐는 아예 다른 질문입니다. 확신의 강도를 포지션 크기로 환산하는 순간부터 위험합니다. 아무리 확신해도 살아남을 수 있는 크기여야 합니다.

자기 판단이 어디서 왔는지도 한 번씩 들여다볼 만합니다. 이 종목을 산 이유가 내가 직접 계산한 결과인지, 아주 잘 쓰인 문서 한 편을 읽은 결과인지. 후자라면 그 문서를 읽은 다른 수만 명과 같은 시점에 같은 버튼을 누르게 됩니다.

방향에 걸었는지, 시점에 걸었는지

AI가 세상을 바꾼다는 명제에는 저도 동의합니다. 다만 명제가 맞는 것과 그 명제로 돈을 버는 건 다른 얘기입니다. 시장은 방향만 보지 않고 시점에도 값을 매기니까요.

지금 내 포지션이 “AI가 온다"에 걸려 있는지, “AI가 특정 시점에 온다"에 걸려 있는지 한 번 따져보시면 좋겠습니다. 후자라면 그 시점이 3년 밀렸을 때 계좌가 버티는지까지 계산해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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