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에 5,670억 배상 명령: 법원이 '중독 설계'를 제조물 결함으로 봤습니다
빅테크 소송 뉴스는 늘 비슷했습니다. 거액을 걸고 소송이 붙고 몇 년을 끌다가 조용히 합의로 끝나는 식이었죠. 이번엔 결이 다릅니다. 법원이 메타에 5억 6,700만 달러, 우리 돈으로 약 5,670억 원을 물어내라고 했습니다. 근거가 “무슨 콘텐츠를 올렸느냐"가 아니라 “앱을 어떻게 만들었느냐"였고요.
콘텐츠가 아니라 ‘설계’를 걸었습니다
이 차이가 생각보다 큽니다.
미국 플랫폼 기업은 지난 30년간 통신품위법 230조라는 방패 뒤에 서 있었습니다. 이용자가 올린 콘텐츠를 두고 플랫폼에 발행인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조항이죠. 누군가 인스타그램에 유해한 게시물을 올려 피해가 나도, 메타는 “우리는 그저 공간을 제공했을 뿐"이라고 방어할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이 논리는 수많은 소송에서 통했습니다.
그런데 원고 측이 프레임을 바꿨습니다. 게시물이 아니라 제품 그 자체를 문제 삼은 겁니다. 무한 스크롤, 자동 재생, 푸시 알림, 스트릭 같은 연속 사용 보상, 미성년자에게도 성인과 똑같이 도는 추천 알고리즘. 이런 기능이 청소년의 뇌 발달 단계를 노려 일부러 체류 시간을 늘리도록 설계됐다는 주장입니다.
이렇게 걸면 230조가 잘 안 먹힙니다. 남이 쓴 글을 문제 삼는 게 아니라 메타가 직접 만든 기능의 결함을 따지는 거니까요. 자동차 회사가 “운전자가 사고를 냈다"고 항변해도 브레이크에 결함이 있으면 책임을 지는 것과 같은 구조입니다.
제조물 책임의 논리가 소프트웨어로 넘어왔습니다
법정에서 오간 논리는 대략 세 갈래였습니다.
하나는 제품에 결함이 있었느냐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결함은 물리적 하자가 아니라 설계상 결함이죠. 더 안전한 대안 설계가 있었는데도 채택하지 않았다면 결함으로 봅니다. 청소년 계정에 기본값으로 시간 제한을 걸거나 심야 알림을 끄거나 추천 강도를 낮추는 선택지가 기술적으로 가능했다는 점이 쟁점이 됐습니다.
다음은 회사가 그 위험을 알았느냐입니다. 여기선 내부 문서가 결정적이었습니다. 자체 연구에서 특정 이용자군의 정신 건강이 나빠지는 신호를 확인하고도 참여 지표를 앞세운 정황이 문제였죠. 몰랐다면 과실이지만 알고도 했다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배상액이 5억 달러를 넘긴 배경에도 이 판단이 깔려 있습니다.
마지막은 이용자에게 충분히 경고했느냐. 담배와 의약품이 경고 문구를 다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소셜 앱은 그런 게 없었습니다.
왜 하필 뉴멕시코였을까요
주 법무장관이 직접 나섰다는 게 큽니다.
개인 이용자가 소송을 걸면 인과관계를 입증하기가 어렵습니다. “당신이 우울해진 게 정말 인스타그램 때문이냐"는 반박을 넘기가 쉽지 않죠. 주 정부가 나서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주민 전체의 공중보건 문제로 판이 커지면서 개별 인과관계 대신 집단적 위해를 따지게 되니까요. 담배 소송과 오피오이드 소송이 걸어온 길이 정확히 이랬습니다.
미국의 40개가 넘는 주가 비슷한 소송을 진행 중이거나 준비하고 있습니다. 뉴멕시코 판결이 각 주 법정에서 참고 사례로 인용되기 시작하면, 메타로선 개별 소송 하나가 아니라 전선 전체가 흔들립니다.
업계는 이미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습니다
메타는 당연히 항소할 겁니다. 5,670억 원이면 메타 분기 매출의 1퍼센트에도 못 미치니 돈 자체가 타격은 아닙니다. 진짜 문제는 판례가 남는다는 것이죠.
움직임은 이미 있었습니다. 미성년자 계정 기본 비공개 전환, 심야 알림 차단, 사용 시간 알림 같은 기능이 최근 몇 년 사이 줄줄이 붙었습니다. 규제를 앞질러 가려는 조치이면서, 법정에서 “우리도 노력했다"고 말하려고 쳐둔 방어선이기도 합니다.
그래도 딜레마는 그대로입니다. 광고로 먹고사는 모델에서 체류 시간은 곧 매출입니다. 앱을 덜 중독적으로 만들면 돈이 줄어드는 구조죠. 이 모순을 자율 규제로 풀 수 있느냐가 앞으로 몇 년을 가릅니다.
국내에도 남의 일이 아닙니다
한국도 청소년 보호를 놓고 규제 얘기가 꾸준히 나오는 편입니다. 게임 셧다운제를 없앤 지 얼마 안 됐는데, 이번엔 화살이 소셜 미디어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가는 길은 좀 다를 수 있습니다. 미국은 법원의 손해배상 판결로 압박이 들어오고, 한국은 입법과 행정 규제가 먼저 움직이는 편이니까요. 어느 쪽이든 서비스 설계 자체가 규제 대상이 된다는 흐름은 같습니다. 국내에서 서비스를 만드는 쪽도 무한 스크롤이나 알림 설계를 언제까지 마음대로 쓸 수 있을지 슬슬 계산해봐야 합니다.
이번 건은 판결이 막 나온 터라 커뮤니티 논의가 아직 얇습니다. 항소심이 어떻게 가는지, 다른 주 소송으로 얼마나 번지는지 봐야 그림이 잡히겠죠.
플랫폼이 만든 기능도 자동차 브레이크처럼 결함 판정을 받을 수 있다, 이번 판결이 남긴 건 이 한 줄입니다. “사용자가 알아서 조절하면 되는 것 아니냐"는 반론도 있지만, 법원은 상대가 청소년일 때 그 논리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봤습니다.
매일 쓰는 앱을 떠올려보면 “내가 원해서 쓰는 것"과 “쓰게 만들어진 것"의 경계가 어디쯤인지 잘 안 잡힙니다. 뉴멕시코 법원은 적어도 상대가 청소년이라면 그 선을 그을 수 있다고 본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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