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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시키는 대로 복붙만 하는 나, 개발자인가 배선인가

한동안 개발자 커뮤니티를 흔든 글이 있습니다. 제목이 이렇습니다. “Don’t be a meat proxy.” 우리말로 옮기면 “고기 프록시가 되지 마세요” 정도인데요. 해커뉴스에서 1614표를 받으며 상단을 차지했습니다. 표현은 거칠지만 찔린 사람이 많았다는 뜻이겠죠.

‘고기 프록시’가 정확히 뭔가요

프록시는 원래 네트워크 용어입니다. 두 시스템 사이에서 요청과 응답을 중계하는 서버를 말하죠. 앞에 ‘고기(meat)‘가 붙으면 그 중계자가 사람이라는 소리입니다. 사람이 배선 역할을 하고 있다는 거죠.

장면을 그려보면 이렇습니다. AI에게 코드를 짜달라고 합니다. 나온 코드를 복사합니다. 터미널에 붙여넣습니다. 에러가 납니다. 에러 메시지를 복사합니다. 다시 AI에게 붙여넣습니다. 새 코드가 나옵니다. 또 복사합니다.

이 루프에서 사람이 하는 일이 뭘까요. 클립보드를 옮기는 것뿐입니다. 판단도 없고 이해도 없습니다. 설계는 말할 것도 없고요. 그냥 두 시스템 사이를 오가는 생물학적 케이블이 된 겁니다.

왜 지금 이 이야기가 터졌을까

2023년만 해도 AI 코딩 도구는 자동완성 수준이었습니다. 사람이 주도하고 AI가 거들었죠. 지금은 반대가 됐습니다. 에이전트가 파일을 읽고 고치고 테스트까지 돌립니다. 사람은 승인 버튼을 누릅니다.

문제는 그 승인이 점점 형식적으로 변한다는 데 있습니다. 코드 100줄이 나왔는데 다 읽고 검토할까요. 처음엔 읽습니다. 열 번쯤 지나면 대충 훑습니다. 스무 번쯤 지나면 그냥 엔터를 칩니다.

역설은 여기 있습니다. AI가 잘할수록 사람은 덜 읽습니다. 덜 읽을수록 문제를 못 잡고요. 그런데 못 잡은 문제는 결국 사람이 책임집니다. 커밋에 찍힌 이름은 AI가 아니니까요.

진짜 위험은 실력이 아니라 ‘이해의 공백’

“AI 쓰면 실력 떨어진다"는 이야기는 예전부터 있었습니다. 계산기 나왔을 때도 그랬고 스택오버플로 나왔을 때도 같은 말이 나왔죠. 그러니 이 주장 자체는 새로울 게 없습니다.

이번 글이 짚은 지점은 조금 다릅니다. 실력이 아니라 이해의 공백이 문제라고 봅니다.

스택오버플로에서 코드를 가져올 때는 최소한 답변을 읽었습니다. 댓글도 봤고 반대 의견도 봤습니다. 어떤 상황에서 통하는 코드인지 대충은 파악했죠. 지금은 그 과정이 없습니다. 코드가 바로 파일에 들어가니까요.

그래서 나중에 장애가 나면 곤란해집니다. 내가 만든 시스템인데 내가 모릅니다. 다시 AI에게 물어봐야 합니다. AI가 헛소리를 해도 알아챌 수 없습니다. 판단 기준이 없으니까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요

글이 제시하는 방향은 의외로 단순합니다. 사이에 서지 말고 위에 서라는 거죠.

우선 복붙 루프가 세 번 이상 반복되면 멈춥니다. 세 번 돌았는데 안 풀렸다면 문제 정의가 틀렸을 가능성이 큽니다. AI를 더 굴릴 게 아니라 문제를 다시 봐야죠.

배선 작업은 사람이 아니라 도구에게 넘깁니다. 에러 메시지를 복사해서 옮기는 일은 스크립트가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클립보드 노릇을 하고 있다면 그건 자동화가 덜 된 겁니다.

그리고 ‘이 코드가 왜 이렇게 생겼는지’는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한 줄 한 줄 외울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구조와 의도는 잡고 있어야죠. 그게 안 되면 리뷰가 아니라 서명일 뿐입니다.

커뮤니티 반응은 갈렸습니다

전부 동의한 건 아닙니다. “그래서 뭘 어쩌라는 거냐"는 반응도 많았습니다. 마감은 정해져 있고 코드는 나와야 하는데 이해할 시간이 없다는 거죠. 반박하기 어려운 현실입니다.

반대편에서는 프록시 역할조차 잠깐이라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도구가 조금만 더 좋아지면 그 중계마저 자동화될 테니까요. 사람이 클립보드 역할에만 머문다면 대체되는 건 시간 문제라는, 꽤 냉정한 관측이었습니다.

복붙 자체가 나쁘다는 얘기는 아니라는 목소리도 있었습니다. 복붙만 하는 상태가 기본값이 되는 게 문제라는 거죠. 급할 때 쓰는 지름길과 항상 다니는 길은 다르니까요.

오늘 하루를 돌아보면

‘고기 프록시’라는 말이 아팠던 건 아마 정확해서일 겁니다. 오늘 작업을 떠올려보면 어떤가요. 판단을 내린 시간이 많았나요, 창 사이를 오가며 붙여넣은 시간이 많았나요.

AI가 코드를 짜는 동안 개발자의 몫은 손에서 머리로 옮겨갑니다. 코드를 치는 자리가 아니라 방향을 정하는 자리로요. 그 자리를 지키지 않으면 남는 건 배선 일뿐입니다.

AI 개발자 코딩 생산성 해커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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