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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거장이 'AI로 글 안 씁니다'라고 선언한 이유

찰스 스트로스라는 이름이 낯선 분도 있을 겁니다. 영국 SF 작가인데요, 휴고상을 세 번 받았고 <레이프 프리 리스트>나 <어카운팅 카오스> 같은 작품으로 알려진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 원래 프로그래머였습니다. 그런 사람이 최근 자기 블로그와 여러 인터뷰에서 “내 작업 과정에 생성형 AI는 들어오지 않는다"고 못박았습니다.

기술을 모르는 사람의 러다이트식 거부가 아닙니다. 코드를 짜봤고 자동화가 뭘 할 수 있는지 아는 사람의 거부라서 더 눈길이 갑니다.

“초고를 뽑아준다"는 제안이 왜 모욕적인가

AI 글쓰기 도구를 파는 쪽의 논리는 대개 이렇습니다. 작가는 아이디어에 집중하고, 지루한 초고 작성은 기계에 맡기라는 것. 말은 그럴듯합니다.

스트로스는 바로 여기를 칩니다. 초고를 쓰는 과정이 곧 생각하는 과정이라는 겁니다. 작가는 머릿속에 완성된 소설을 넣어두고 그걸 받아쓰는 사람이 아닙니다. 문장을 하나씩 쓰면서 인물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고, 3장을 쓰다가 1장이 틀렸다는 걸 깨닫습니다. 쓰기 전에는 자기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 본인도 정확히 모릅니다.

그래서 “초고는 기계가, 아이디어는 당신이"라는 분업은 성립하지 않습니다. 아이디어가 초고 안에서 태어나기 때문입니다. 초고 작성을 아웃소싱하는 건 지루한 부분을 떼어내는 게 아니라 소설이 만들어지는 유일한 장소를 통째로 내주는 일이라고 그는 말합니다.

표절 논란과는 결이 다른 반론

지금까지 작가들의 AI 반대는 대체로 두 갈래였습니다. 하나는 저작권 문제, 그러니까 내 책을 허락 없이 학습 데이터로 썼다는 분노입니다. 다른 하나는 일자리 문제입니다. 미국작가조합 파업 때도 이 두 축이 핵심이었죠.

스트로스의 반론은 세 번째 축입니다. 저작권과 일자리 문제가 다 풀린다고 쳐도 여전히 남는 문제라는 겁니다. 완벽하게 라이선스된 데이터로 학습한 모델이 있고 작가한테 돈도 제대로 간다고 칩시다. 그래도 안 쓰겠다고 합니다. 이유는 하나입니다. 쓰는 행위 자체가 창작이고, 그걸 위임하는 순간 남는 게 없어서입니다.

이 둘은 성격이 다릅니다. 앞의 두 반론은 시간이 지나면 제도로 봉합될 수 있습니다. 라이선스 계약이 생기고 로열티 구조가 만들어지고 노조 협약이 체결되면 상당 부분 정리됩니다. 세 번째 반론은 다릅니다. 제도가 해결해주는 종류의 문제가 아닙니다.

프로그래머 출신이라 더 설득력 있는 이유

여기서 개발자분들은 반문하고 싶어질 겁니다. 코딩 에이전트는 잘만 쓰는데 왜 글쓰기는 안 되냐고요.

스트로스도 이 차이를 압니다. 코드에는 정답을 가려주는 기준이 있습니다. 테스트가 통과하면 되고 컴파일이 되면 됩니다. AI가 짠 코드가 맞는지 틀린지 기계가 판정해줍니다. 소설에는 그런 게 없습니다. 이 문장이 좋은지 나쁜지 판정하는 건 작가의 감각뿐이고, 그 감각은 직접 수만 문장을 써봐야 생깁니다.

여기가 무섭습니다. AI가 뽑아준 문장을 고르기만 하다 보면 고르는 능력 자체가 퇴화합니다. 근육을 안 쓰면 빠지는 것과 같습니다. 처음에는 AI 초고를 곧잘 다듬습니다. 몇 년 뒤에는 뭘 다듬어야 할지 모르게 되고요. 코딩 쪽에서도 비슷한 우려가 나옵니다. 다만 코드에는 테스트라는 안전망이 있고 소설에는 없습니다.

그래서 이게 현실적인 입장일까

솔직히 말하면, 스트로스처럼 선언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이미 이름이 있고 안 써도 책이 나갑니다. 마감에 쫓기는 신인 작가나 콘텐츠 단가에 시달리는 프리랜서에게 “쓰는 행위가 창작이니 AI를 거부하라"는 말은 배부른 소리로 들릴 수 있습니다.

이 점은 스트로스 본인도 인정하는 편입니다. 그의 선언은 모두에게 들이미는 규범이라기보다 자기 작업에 두는 원칙에 가깝습니다. 다만 거기서 나오는 질문까지 개인적이진 않습니다. AI를 쓴 글과 안 쓴 글이 결과물로 구분이 안 된다면, 그때도 어떻게 썼는지가 의미가 있느냐는 겁니다.

답은 분명합니다. 독자는 구분 못 해도 작가에게는 완전히 다른 일이라는 겁니다. 10년 동안 AI로 스무 권을 낸 작가와 직접 다섯 권을 쓴 작가는 같은 사람이 아닙니다. 결과물이 아니라 사람이 달라져 있습니다.

이 논쟁이 남기는 것

한 가지 짚어둘 게 있습니다. 이 주제로 최근 한 달간 커뮤니티에서 오간 논의를 찾아봤는데, 뚜렷한 확산 조짐은 안 보였습니다. 아직은 소수 작가 사이의 이야기라는 뜻입니다.

그래도 이 반론이 눈에 띄는 건 논쟁의 축을 옮겨놨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AI 창작 논쟁은 “결과물이 얼마나 좋으냐"를 두고 벌어졌습니다. 스트로스는 결과물 얘기를 아예 하지 않습니다. 과정에서 무엇이 사라지느냐를 묻습니다.

이건 글쓰기만의 문제가 아닐 겁니다. 코드를 짜든 기획서를 쓰든, 우리는 결과물을 만들면서 동시에 만들 줄 아는 사람이 되어갑니다. 후자를 아웃소싱하면 뭐가 남을까요. 지금 하는 일에서 과정 자체가 목적인 부분, 얼마나 된다고 보십니까?

AI 생성형AI 창작 글쓰기 찰스스트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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