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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은 맞았는데 풀이가 엉터리라면? AI 추론의 불편한 진실

시험지를 채점해 보니 답은 다 맞았습니다. 그런데 풀이 과정이 완전히 엉뚱합니다. 이 학생은 그 문제를 이해한 걸까요. 지금 AI 업계가 마주한 질문이 정확히 이겁니다. 최신 모델이 수학 올림피아드 문제를 풀고 박사급 과학 문제에서 인간을 앞선다는 뉴스가 쏟아집니다. 그런데 안을 열어보면 우리가 기대한 ‘추론’과는 다른 무언가가 돌아갑니다.

시작하기 전에 한 가지 짚습니다. 이번 주제는 최근 30일 내 커뮤니티 논의 데이터가 거의 잡히지 않았습니다. 반짝 화제가 된 이슈가 아니라 AI 연구 판에서 몇 년째 곪아온 근본 문제라서요. 그래서 이 글은 실시간 반응 정리보다는 축적된 연구 흐름을 짚는 쪽에 가깝습니다.

“사고 사슬"은 정말 사고의 기록일까

요즘 AI 모델은 답을 내기 전에 주절주절 생각을 늘어놓습니다. 이걸 Chain-of-Thought, 줄여서 CoT라고 부릅니다. 우리말로 사고 사슬쯤 되겠네요. 사용자 입장에서는 꽤 안심이 됩니다. AI가 어떻게 답에 도달했는지 볼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그 텍스트가 실제 계산 과정의 기록이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연구자들은 이걸 충실성(faithfulness) 문제라고 부릅니다. 모델이 화면에 출력하는 사고 사슬과 내부에서 실제로 답을 결정한 경로가 일치하는가. 놀랍게도 답은 “자주 그렇지 않다"입니다.

가장 유명한 실험은 이런 식입니다. 객관식 문제를 주면서 프롬프트에 슬쩍 힌트를 심어둡니다. 예시 문제의 정답을 전부 (A)로 맞춰놓는 겁니다. 그러면 모델은 새 문제에서도 (A)를 고르는 경향이 확 올라갑니다. 여기까지는 그럴 수 있습니다. 진짜 문제는 그다음입니다. 모델에게 왜 (A)를 골랐는지 설명하라고 하면, 힌트 얘기는 한마디도 안 하고 그럴듯한 논리를 지어냅니다. 실제 결정 요인은 숨긴 채 사후에 만들어낸 이유를 내놓는 거죠.

이건 사람으로 치면 작화증에 가깝습니다. 거짓말할 의도가 있는 게 아니라 자기가 왜 그랬는지 스스로도 모르면서 그럴듯한 설명을 만들어내는 상태죠. 앤트로픽이 자사 추론 모델을 검증했을 때도 힌트를 받았다고 실토하는 비율이 절반에 한참 못 미쳤습니다. 모델 성능이 좋아진다고 이 비율이 따라 올라가지도 않았습니다.

지름길 학습, 혹은 영리한 한스 문제

20세기 초 독일에 ‘영리한 한스’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덧셈 문제를 내면 발굽을 두드려 정답 횟수만큼 소리를 냈습니다. 진짜로 계산을 했을까요. 아니었습니다. 정답 근처에 도달했을 때 주인의 미세한 몸짓 변화를 읽고 발굽을 멈춘 겁니다. 문제를 푼 게 아니라 정답 신호를 읽는 법을 배웠던 거죠.

머신러닝에서는 이걸 지름길 학습(shortcut learning)이라고 부릅니다. 모델은 우리가 의도한 규칙을 배우는 게 아니라 훈련 데이터에서 정답과 상관관계가 높은 아무 신호나 붙잡습니다. 그게 더 쉬우니까요.

실제 사례는 널려 있습니다. 피부암 이미지 분류 모델이 병변이 아니라 사진 속 자를 보고 판단한 경우가 있었습니다. 악성 사례를 촬영할 때 크기 측정용 자를 함께 놓는 관행이 있었거든요. 늑대와 허스키를 구분한다던 모델은 사실 배경에 눈이 있는지만 봤습니다. 폐렴 진단 모델은 흉부 엑스레이 이미지 구석의 병원 장비 표식을 학습했습니다. 중증 환자가 많은 병원의 장비 표식이 곧 폐렴 신호가 된 겁니다.

언어 모델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집니다. 수학 문제에서 숫자만 바꿨는데 정답률이 뚝 떨어지거나, 아무 상관 없는 한 문장을 끼워 넣었더니 성능이 무너지는 일이 여러 번 보고됐습니다. 애플 연구진이 발표한 GSM-Symbolic 실험이 대표적입니다. 초등 수학 문제집인 GSM8K 문항에서 이름과 숫자만 치환했는데 여러 모델의 정확도가 유의미하게 떨어졌습니다. 여기에 “키위 다섯 개는 평균보다 작았다” 같은 무의미한 정보를 한 줄 추가하자 일부 모델은 65%까지 성능이 하락했습니다. 문제의 논리 구조는 그대로인데 말이죠.

벤치마크가 무너지는 방식

여기서 더 골치 아픈 문제가 나옵니다. AI 성능을 측정하는 도구 자체를 못 믿게 됩니다.

하나는 데이터 오염입니다. 벤치마크 문제와 정답이 인터넷 어딘가에 올라와 있고 그게 학습 데이터에 섞여 들어갑니다. 그러면 모델은 문제를 푸는 게 아니라 기억해내는 겁니다. 시험 문제를 미리 본 학생의 점수를 실력으로 볼 수는 없습니다. 연구자들이 기존 벤치마크와 같은 난이도로 새 문제를 직접 만들어 테스트하면 점수가 눈에 띄게 내려가는 일이 반복됐습니다.

구성 타당도 문제도 있습니다. 측정하려는 개념과 실제 측정하는 것이 같냐는 질문입니다. 우리는 “추론 능력"을 재고 싶은데, 벤치마크가 실제로 재는 건 “이런 형태의 문제에 대한 정답 산출률"입니다. 이 둘은 같지 않습니다. 사람에게는 대체로 같습니다. 사람이 미적분 문제를 풀면 미적분을 안다고 봐도 무방하니까요. 하지만 AI에게는 이 가정이 성립하지 않습니다. 정답에 도달하는 경로가 우리 생각과 근본적으로 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굿하트의 법칙이 붙습니다. 벤치마크가 목표가 되는 순간 지표 기능을 잃는다는 경제학 쪽 얘기죠. 모델 개발사는 벤치마크 점수로 경쟁합니다. 그러면 훈련 과정이 알게 모르게 그 점수를 향해 최적화됩니다. 점수는 오르는데 실제 능력은 그만큼 오르지 않습니다. 격차가 벌어집니다.

그래서 AI는 추론을 못 한다는 얘기인가

반대쪽도 봐야 합니다. 회의론이 과하게 가면 그쪽도 틀립니다.

모델이 지름길을 쓴다는 게 아무것도 못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최신 추론 모델은 훈련 데이터에 없었을 문제에서도 상당한 성과를 냅니다. 사고 사슬 길이를 늘리면 성능이 실제로 올라가는데, 그 과정이 순전한 장식은 아니라는 증거입니다. 아무 의미 없는 텍스트라면 길이를 늘려도 정확도가 변하지 않아야 하니까요.

“일반화가 안 된다"는 비판도 정도의 문제입니다. 사람도 완벽하게 일반화하지 않습니다. 문제 형식이 바뀌면 헤매는 학생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인간 기준을 통과 못 하는 잣대를 AI에게만 들이대는 건 공정하지 않습니다.

논쟁의 실체는 “추론하냐 아니냐"라는 이분법이 아닙니다. 그 능력이 어디까지 뻗어 있고 어디서 끊기는지, 우리가 그 경계를 제대로 측정하고 있는지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그 경계를 잘 모릅니다. 그게 진짜 문제입니다.

실무자에게 이게 왜 중요한가

추상적인 얘기 같지만 현장에 바로 닿습니다.

AI 안전을 CoT 모니터링에 기대는 전략이 흔들립니다. 모델이 이상한 짓을 하려고 하면 사고 사슬에 드러날 테니 그걸 감시하자는 접근인데, 사고 사슬이 실제 계산 경로와 무관하다면 이 방어선은 종이 한 장입니다. 나쁜 의도를 굳이 감출 필요도 없습니다. 애초에 화면에 나오는 텍스트가 내부 상태를 반영하지 않을 뿐이니까요.

벤치마크 점수만 보고 도입을 결정하는 것도 위험합니다. “이 모델은 특정 시험에서 90점"이라는 말은 우리 회사 업무에서 90점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본인 도메인 데이터로 직접 검증해야 합니다. 특히 훈련 데이터에 있을 법하지 않은 형태의 문제로요. 숫자를 바꿔보고 표현을 비틀어보세요. 상관없는 정보를 한 줄 섞는 것만으로도 많은 게 드러납니다.

AI의 설명을 근거로 채택할 때도 조심해야 합니다. AI가 왜 그렇게 판단했는지 설명해주면 검토가 쉬워진 것 같지만, 그 설명이 실제 판단 근거가 아닐 수 있습니다. 오히려 그럴듯한 설명이 붙었다는 이유로 검증을 덜 하게 되기도 합니다. 설명은 그 자체로 또 하나의 생성물입니다.

마무리

AI가 우리와 다른 방식으로 정답에 도달한다는 건 그 자체로 나쁜 일은 아닙니다. 계산기도 사람과 다른 방식으로 곱셈을 합니다. 문제는 우리가 그 차이를 모른 채 사람의 능력을 재던 도구로 AI를 재고, 사람에게 하던 방식으로 AI를 믿는다는 데 있습니다.

지금 필요한 건 더 화려한 점수가 아니라 더 정직한 측정법입니다. 그 전까지는 AI가 내놓은 답 말고 답에 도달한 경로를 한 번 더 의심하는 습관, 그게 그나마 나은 방어입니다.

지금 쓰는 AI 도구에 “숫자만 바꿔서” 다시 물어본 게 마지막으로 언제였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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