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나라의 땅문서가 통째로 사라졌다 — 루마니아 토지대장 해킹이 남긴 질문
내 집이 내 집이라는 걸 증명하는 건 무엇일까요. 등기부등본입니다. 그런데 그 등기부등본을 관리하는 국가 데이터베이스가 통째로 지워진다면 어떻게 될까요. 루마니아에서 토지대장 데이터가 파괴됐다는 이야기가 돌면서, 평소 아무도 신경 쓰지 않던 국가 데이터 백업이라는 주제가 갑자기 무거워졌습니다.
먼저 솔직하게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이번 주제는 커뮤니티 데이터가 거의 잡히지 않았습니다. 레딧에서도 최근 30일 내 유의미한 논의를 찾지 못했고요. 그래서 이 글은 개별 사건의 세부 사실관계를 확정하는 대신, 이런 유형의 사고가 왜 반복되는지, 그리고 우리가 무엇을 짚어봐야 하는지에 초점을 맞추겠습니다. 확인되지 않은 숫자를 그럴듯하게 나열하는 것보다 그게 정직하다고 봅니다.
토지대장은 왜 특별한가
일반적인 데이터 유출과 토지대장 파괴는 성격이 완전히 다릅니다. 유출은 정보가 복사된 겁니다. 원본은 그대로 있고, 피해는 프라이버시와 사기 위험으로 나타납니다. 반면 파괴는 원본이 사라진 겁니다. 복사본이 없으면 그 정보는 세상에서 없어집니다.
토지대장은 그중에서도 최악의 케이스입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대체 불가능합니다. 은행 거래 내역은 상대 은행에도 기록이 남습니다. 하지만 “이 필지의 소유자는 누구인가"에 대한 최종 권위는 국가 대장 하나뿐입니다. 이중 장부가 없다는 게 원래 장점이었는데, 사고가 나면 그게 곧 단일 실패 지점이 됩니다.
둘째, 수백 년치 누적입니다. 토지 소유권 기록은 상속과 분할, 매매가 층층이 쌓인 결과물입니다. 지난달 데이터만 날아가도 문제지만, 1900년대 기록이 날아가면 재구성 자체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셋째, 경제 전체가 여기에 걸려 있습니다. 부동산 담보 대출, 상속 절차, 세금 부과, 도시 계획이 전부 이 대장을 참조합니다. 대장이 흔들리면 금융 시스템이 같이 흔들립니다.
“백업이 있다"와 “복구가 된다"는 다른 말입니다
이런 사고가 터질 때마다 반복되는 패턴이 있습니다. 담당 기관은 “백업이 있다"고 발표합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도 복구가 안 됩니다. 왜일까요.
가장 흔한 이유는 백업이 온라인 상태로 연결돼 있었다는 겁니다. 공격자가 관리자 권한을 잡으면 운영 DB만 지우지 않습니다. 백업 스토리지도 같은 네트워크, 같은 인증 체계 안에 있으면 나란히 지워집니다. 랜섬웨어 그룹이 몇 년 전부터 표준으로 삼는 방식입니다. 먼저 백업을 무력화하고, 그다음 본체를 암호화하거나 삭제합니다.
두 번째 이유는 복구 테스트를 한 번도 안 해본 백업입니다. 백업 작업이 매일 밤 성공했다고 로그가 찍혀도, 실제로 그 파일에서 시스템을 되살려본 적이 없으면 그건 백업이 아니라 백업처럼 생긴 파일입니다. 테이프가 읽히지 않거나, 스키마가 안 맞거나, 암호화 키를 잃어버린 사례는 업계에 차고 넘칩니다.
세 번째는 보존 기간입니다. 침입자가 몇 달 전에 들어와 조용히 데이터를 훼손해왔다면, 30일치 백업만 갖고 있는 조직은 이미 오염된 데이터만 갖고 있는 셈입니다. 백업은 있는데 쓸 수 있는 백업이 없는 상황이죠.
3-2-1 규칙, 이제는 3-2-1-1-0
백업 업계에는 오래된 원칙이 있습니다. 3-2-1 규칙입니다. 사본 3개, 서로 다른 매체 2종, 그중 1개는 물리적으로 떨어진 곳에. 클라우드 이전 시대에 만들어진 이 규칙은 지금도 유효하지만, 이제는 부족하다는 게 중론입니다.
그래서 나온 게 3-2-1-1-0입니다. 뒤에 두 자리가 추가됐는데요. 뒤쪽 1은 오프라인 또는 변경 불가(immutable) 사본 1개를 뜻합니다. 관리자 권한을 가진 사람조차 지울 수 없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마지막 0은 복구 테스트 오류 0건입니다. 정기적으로 실제 복구를 돌려보고 검증하라는 겁니다.
핵심은 뒤에 붙은 이 두 자리입니다. 공격자가 최고 권한을 탈취했다는 전제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권한 관리를 잘하면 된다"는 대응은 이미 실패한 접근입니다. 권한은 언제든 뚫린다고 가정하고, 뚫려도 지울 수 없는 사본을 따로 둬야 합니다.
국가 시스템이라서 더 위험한 이유
민간 기업이 이런 사고를 당하면 최소한 시장 압력이 작동합니다. 고객이 떠나고 주가가 빠지니까요. 공공 시스템은 다릅니다.
문제는 예산입니다. 백업 인프라는 평소에는 아무 성과도 내지 않는 비용입니다. 정치인 입장에서 새 민원 포털을 만드는 것과 오프라인 백업 테이프 시스템을 갱신하는 것 중 어느 쪽이 사진 찍기 좋을까요. 답은 명확합니다. 그래서 공공 IT 예산에서 백업과 재해복구는 늘 후순위로 밀립니다.
또 하나는 레거시입니다. 국가 대장 시스템은 대개 수십 년 된 코드 위에 계속 덧대어 만들어집니다. 원래 설계자는 은퇴했고, 문서는 없고, 유지보수는 소수 벤더에 묶여 있습니다. 이런 시스템에서 “복구 절차를 검증하자"는 말은 실행 주체가 없는 구호가 되기 쉽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뭘 봐야 하나
이 사건에서 진짜 중요한 건 범인이 누구냐가 아닙니다. 복구가 되느냐입니다. 그리고 복구가 안 된다면, 국가는 무엇을 근거로 소유권을 다시 확정할 것인가입니다. 공증인 사본, 세무 기록, 지자체 문서, 개인이 갖고 있는 종이 등기부 같은 것들이 대안이 될 텐데요. 이런 분산된 이중 기록이 얼마나 남아 있느냐가 실제 피해 규모를 결정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디지털 전환이 덜 된 나라일수록 종이 사본 덕에 덜 다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도 분명합니다. 한국의 등기 시스템, 주민등록 데이터베이스, 건강보험 기록은 어떤 상태일까요. 백업은 오프라인에 있을까요. 지난 1년 안에 실제 복구 훈련을 해봤을까요. 이런 질문에 즉시 답할 수 있는 기관이 몇이나 될지 궁금합니다.
데이터가 사라진 뒤에 백업을 확인하는 건 늦습니다. 오늘 확인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게, 사실 백업 점검이 가장 미뤄지기 쉬운 이유이기도 합니다. 여러분의 조직은 마지막으로 복구 테스트를 언제 해보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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