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가수스 3분 소요

스파이웨어를 쫓던 의원이 스파이웨어에 뚫렸다: 페가수스가 유럽 민주주의 심장부를 겨눈 아이러니

세상에는 이보다 더 잔인한 아이러니가 없습니다. 스파이웨어를 조사하던 사람의 휴대폰이 그 스파이웨어에 뚫렸다면 어떨까요. 페가수스를 둘러싼 최신 소식이 바로 그 지점을 건드립니다. 감시 도구가 이제는 그것을 감시하려는 사람까지 노리고 있다는 이야기인데요. 오늘은 이 사건이 왜 단순한 해킹 뉴스가 아닌지 짚어보겠습니다.

먼저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번 주제는 최근 30일 사이 커뮤니티에서 활발하게 논의된 신선한 화제는 아니었습니다. 다만 페가수스와 유럽의회의 충돌은 몇 년째 이어지는 진행형 사건이라, 지금 시점에서 다시 정리해볼 가치가 충분합니다.

페가수스가 뭐길래

페가수스는 이스라엘 기업 NSO 그룹이 만든 스파이웨어입니다. 이름은 그럴듯하지만 하는 일은 무시무시한데요. 대상의 스마트폰에 몰래 심어져 통화, 메시지, 사진은 물론 카메라와 마이크까지 원격으로 켤 수 있습니다.

가장 악명 높은 부분은 감염 방식입니다. 이른바 제로 클릭 공격인데요. 피해자가 수상한 링크를 누르거나 파일을 열 필요조차 없습니다. 문자 한 통, 부재중 전화 한 번으로도 휴대폰이 통째로 넘어갈 수 있습니다. 사용자는 자기 폰이 감시당하는지 알아챌 방법이 사실상 없습니다.

NSO는 페가수스를 “테러와 중범죄를 막기 위한 정부 전용 도구"라고 설명합니다. 문제는 이 도구가 실제로는 언론인, 인권 운동가, 야당 정치인을 겨냥해왔다는 정황이 계속 드러났다는 점입니다.

감시하는 자가 감시당할 때

이번 사건의 핵심은 표적입니다. 페가수스 오남용을 조사하던 유럽의회 인사가 정작 감염 대상이 됐다는 것인데요. 감시 산업을 파헤치는 손을 감시 도구로 되받아친 셈입니다.

이게 왜 특별할까요. 유럽의회는 페가수스 스캔들을 다루기 위해 별도 조사위원회를 꾸릴 만큼 이 문제에 진심이었습니다. 실제로 2023년 의회는 스파이웨어의 불법 사용을 끝내야 한다며 강경한 결의를 채택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조직의 구성원이 표적이 됐다는 건, 감시자들이 규제 시도 자체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신호로 읽힙니다.

시민단체 시티즌랩(Citizen Lab)의 존재도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이 캐나다 토론토대학 연구소는 페가수스 감염 사례를 기술적으로 검증해온 세계 최고 권위의 디지털 포렌식 조직인데요. 정치인이 “내가 해킹당한 것 같다"고 의심할 때, 그 의심을 과학적 증거로 바꿔주는 곳이 바로 여기입니다. 이번 건 역시 이런 독립 검증 기관이 없었다면 그냥 음모론으로 묻혔을 가능성이 큽니다.

유럽이 이 문제에 예민한 이유

유럽 정치권이 페가수스에 유독 날을 세우는 데는 배경이 있습니다. 스페인에서는 카탈루냐 독립 진영 인사들이 대거 감염된 이른바 “카탈랑게이트"가 터졌고, 헝가리와 폴란드에서는 정부가 야당과 언론인을 감시하는 데 페가수스를 썼다는 의혹이 불거졌습니다.

한 유튜브 토론에서 유럽국민당(EPP) 그룹이 내건 제목이 이 상황을 압축합니다. “페가수스 스파이웨어 스캔들과 EU 민주주의에 미치는 영향"이었는데요. 감시 도구 문제를 사이버보안이 아니라 민주주의 문제로 규정한 것입니다.

논리는 이렇습니다. 야당 정치인의 휴대폰이 열리면 선거 전략이 새어나갑니다. 언론인의 폰이 뚫리면 취재원이 노출됩니다. 조사위원이 감시당하면 조사 자체가 무력화됩니다. 결국 페가수스는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넘어 권력을 견제하는 시스템 전체를 겨냥하는 무기가 됩니다.

규제는 왜 이렇게 더딜까

문제를 알면서도 유럽이 페가수스를 쉽게 못 막는 이유가 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각국 정부 스스로가 이 도구의 고객이기 때문입니다. 테러 대응이나 안보 수사를 명분으로 페가수스를 도입한 나라가 적지 않습니다.

여기서 이해관계가 꼬입니다. 의회는 규제하자고 목소리를 높이는데, 정작 회원국 정부들은 이 도구를 손에서 놓기 싫어합니다. “우리가 쓸 땐 안보, 남이 쓸 땐 사찰"이라는 이중 잣대가 규제의 발목을 잡습니다. 스파이웨어 판매와 사용을 투명하게 공개하자는 제안이 번번이 힘을 잃는 배경입니다.

마무리

이번 사건이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감시 도구는 이제 규칙을 만드는 사람들까지 겨냥할 만큼 대담해졌다는 것입니다. 스파이웨어를 조사하던 사람이 스파이웨어에 뚫리는 세상에서, 과연 누구의 휴대폰이 안전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기술은 중립적이라고들 합니다. 하지만 제로 클릭으로 마이크를 켤 수 있는 도구가 누구 손에 들어가느냐에 따라, 그것은 테러 대응 무기도 되고 민주주의를 겨눈 총구도 됩니다. 여러분의 주머니 속 스마트폰은, 지금 어느 쪽 세상에 놓여 있을까요.

페가수스 스파이웨어 유럽의회 사이버보안 디지털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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