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이 아니라 CEO가 먼저 미쳐간다 — 테크 리더들의 'AI 정신증' 증후군
지난 몇 달간 ‘AI psychosis(AI 정신증)‘라는 단어가 부쩍 자주 들립니다. 챗봇과 길게 대화하다 현실 감각을 잃거나, AI가 해준 말을 신탁처럼 믿는 일반 사용자들의 사례였는데요. 그런데 최근 테크 업계에서 더 흥미로운 진단이 나왔습니다. 정작 그 챗봇을 만드는 실리콘밸리 CEO들이 먼저 미쳐가고 있다는 겁니다.
‘AI 정신증’, 어쩌다 CEO에게 옮겨붙었나
원래 AI 정신증은 임상 용어가 아닙니다. 챗봇과의 장시간 대화 끝에 망상적 사고에 빠진 일반인 사례를 언론이 묶어 부른 별명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이 표현이 최근에는 테크 CEO들에게로 향하고 있습니다.
논리는 단순합니다. AI가 모든 것을 바꿀 거라고 가장 강하게, 가장 자주 떠드는 사람이 누구냐는 거죠. 사용자가 아니라 그 제품을 파는 사람들입니다. 본인이 만든 데모와 본인이 띄운 비전에 본인이 가장 먼저 취하는 구조라는 지적입니다.
증상 1: 직원을 자르고 그 자리에 ‘AI’를 앉히겠다는 선언
가장 눈에 띄는 증상은 인력 발표입니다. 최근 1~2년 사이 빅테크와 스타트업 CEO들 입에서 반복되는 문장이 있습니다. “이 업무는 곧 AI가 대체할 수 있습니다”라는 말입니다.
문제는 그 발언이 실제 내부 검증을 거쳤느냐입니다. 현장에서 일하는 엔지니어와 PM들이 SNS와 익명 게시판에서 토로하는 내용은 한결같습니다. 데모에서 잘 돌아가는 것과 프로덕션에서 안정적으로 돌아가는 것은 다른 문제라는 건데요. 그런데 CEO는 데모만 보고 인력 계획을 짭니다.
증상 2: 자기 제품을 자기가 가장 과대평가한다
두 번째 증상은 자사 모델에 대한 맹신입니다. “우리 모델이 박사급이다”, “AGI에 거의 다 왔다”, “올해 안에 코딩은 끝난다” 같은 말이 분기 발표마다 반복됩니다.
이게 마케팅이라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CEO들이 내부 회의에서도 같은 말을 진심으로 한다는 게 문제입니다. 자기 제품의 한계를 가장 잘 알아야 할 사람이, 자기 제품을 가장 모르게 되는 역설입니다. 마치 자기 챗봇에 가스라이팅을 당한 것처럼요.
증상 3: 비판을 ‘AI 시대를 못 따라오는 사람’으로 환원
세 번째는 더 미묘합니다. AI에 회의적인 직원이나 외부 전문가가 우려를 표하면, 그 의견 자체를 듣지 않고 “AI를 두려워하는 사람”으로 분류해버리는 패턴입니다.
기술적 한계, 환각률, 법적 리스크, 직원 사기 문제 — 이런 구체적인 지적들이 “당신은 변화를 거부하는 사람"이라는 한 마디로 묻혀버립니다. CEO 본인은 비전을 지키고 있다고 믿겠지만, 외부에서 보면 비판을 차단하는 정신적 방어막에 가깝습니다.
증상 4: ‘AI 네이티브 조직’이라는 이름의 강박
마지막 증상은 조직 운영입니다. 모든 회의에 AI 노트테이커를 넣고, 모든 문서를 AI에게 먼저 쓰게 하고, 채용 기준에 “AI를 일상적으로 쓰는가"를 넣습니다. 도구의 효용성을 따지는 게 아니라 AI를 쓴다는 사실 자체가 충성도의 증거가 됩니다.
문제는 이게 종교 의식에 가까워진다는 점입니다. AI를 쓰면 일이 잘 되는지가 아니라, AI를 안 쓰면 의심받는 구조. 일종의 AI 신정정치(theocracy)라는 비꼼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진짜 위험은 ‘직원의 AI 정신증’이 아니다
언론이 그동안 주목해온 건 일반 사용자들의 AI 정신증이었습니다. 챗봇에 빠진 외로운 사람들, 챗봇의 조언을 맹신하는 청소년들 같은 이야기죠. 물론 중요한 문제입니다.
하지만 사회적 영향력으로 보면 CEO 한 명의 AI 정신증이 훨씬 큽니다. 일반 사용자가 망상에 빠지면 본인 인생이 흔들리지만, CEO가 망상에 빠지면 수천 명 직원의 고용과 수십억 달러의 자본 배분, 그리고 사회 전체의 노동 시장이 흔들립니다. 챗봇 한 번 쓰지 않은 사람의 삶까지 바꿔놓는다는 뜻입니다.
마무리: ‘AI 거품’이 아니라 ‘리더십 환각’의 문제
지금 시장에서 흔히 말하는 ‘AI 거품’은 결국 밸류에이션과 매출의 문제로 환원됩니다. 그런데 이번 ‘CEO AI 정신증’ 담론은 결이 다릅니다. 리더가 현실을 인식하는 능력 자체가 손상됐다는 진단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다니는 회사의 경영진은 어떤가요? AI에 대해 회의적인 의견을 말했을 때, 그게 진지하게 검토됐나요, 아니면 “변화를 거부하는 사람"으로 분류됐나요? 어쩌면 이 질문 하나가 그 회사의 향후 2~3년을 가늠하는 가장 정확한 리트머스 시험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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