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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 회사도 '우리는 AI 기업입니다': AI 워싱 광풍의 민낯

요즘 스타트업 IR 자료를 보면 묘한 공통점이 있습니다. 어제까지 “디지털 마케팅 에이전시"였던 회사가 오늘은 “AI 기반 인사이트 플랫폼"이 되어 있고, “전략 컨설팅 펌"이 “AI-네이티브 어드바이저리"로 둔갑해 있습니다. 2025년 닷컴 버블 때 회사 이름 뒤에 “.com"만 붙이면 주가가 뛰었던 그 풍경이, 20년 만에 “AI"라는 두 글자로 부활했습니다.

“AI 피벗” 한 마디면 통장이 두꺼워진다

최근 한 크리에이터가 올린 영상 “Why ‘we’re pivoting to AI’ prints money"는 업로드 며칠 만에 업계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습니다. 핵심 메시지는 간단합니다. 같은 제품, 같은 인력, 같은 매출이라도 회사 소개 문구에 “AI-powered"를 붙이는 순간 밸류에이션이 2~3배로 뛴다는 겁니다.

실제로 2026년 1분기 VC 투자 데이터를 보면, “AI” 키워드를 IR 덱에 명시한 시드 라운드의 평균 밸류에이션이 그렇지 않은 회사보다 약 40% 높았습니다. 문제는 그 “AI"가 실제로는 OpenAI API 한 번 호출하는 챗봇 위젯 수준인 경우가 태반이라는 점입니다.

PR 회사까지 뛰어든 이유

흥미로운 건 이 흐름이 테크 회사를 넘어 PR·홍보 에이전시까지 번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전통적으로 “사람의 관계"가 핵심 자산이었던 업종인데, 왜 굳이 AI 간판을 달까요.

이유는 고객사의 KPI에 있습니다. 대기업 마케팅 임원들이 본사로부터 “AI 활용 비중을 늘려라"는 압박을 받기 시작했고, 외주 파트너 선정 기준에도 “AI 역량"이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PR 회사 입장에서는 살아남으려면 AI 기업처럼 보여야 하는 겁니다. 실제 업무는 여전히 보도자료 쓰고 기자 미팅 잡는 것이지만, RFP에는 “AI 기반 미디어 모니터링 솔루션 활용"이라고 적어야 입찰 자격이 생깁니다.

AI 워싱의 세 가지 유형

지금 시장에서 관찰되는 AI 워싱은 크게 세 가지 패턴으로 나뉩니다.

첫째, 래퍼 위장형입니다. ChatGPT API를 호출하는 얇은 인터페이스 하나 얹어놓고 “자체 AI 엔진"이라고 홍보합니다. 둘째, 리브랜딩형입니다. 5년 전부터 쓰던 룰 기반 자동화 시스템을 “AI 어시스턴트"로 이름만 바꿉니다. 셋째, 유령 AI형인데, 가장 악질입니다. AI가 처리하는 척 광고하지만 실제로는 필리핀이나 인도의 인력이 뒤에서 수동으로 작업하는 경우입니다. 이미 미국에서는 이 케이스로 SEC 조사를 받은 스타트업이 여럿 있습니다.

투자자들도 알지만 멈출 수 없는 이유

재미있는 점은 VC들도 이 현상을 안다는 겁니다. 그런데 왜 계속 돈을 넣을까요. 답은 FOMO와 LP 보고서입니다. 펀드 매니저가 LP(출자자)에게 “우리 포트폴리오의 70%가 AI 기업"이라고 보고해야 다음 펀드를 모을 수 있습니다. 진짜 AI 회사인지 AI 코스프레인지는 부차적인 문제가 됩니다.

이게 바로 닷컴 버블 때와 똑같은 구조입니다. 1999년에도 펀드매니저들은 “이건 거품"이라는 걸 알면서도 거품에 올라타지 않으면 벤치마크를 따라잡을 수 없어서 계속 들어갔습니다. 결과는 모두가 아는 대로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봐야 할까

AI 워싱이 만연하다고 해서 AI 자체가 가짜라는 뜻은 아닙니다. 진짜 AI 기술로 산업을 바꾸는 회사들은 분명히 존재하고, 그들이 만드는 가치는 진짜입니다. 문제는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는 비용이 점점 비싸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다음에 어떤 회사가 “AI 기반"이라고 자신을 소개한다면, 한 가지만 물어보세요. “그 AI가 없어지면 당신 서비스의 어떤 기능이 멈춥니까?” 명확한 답이 나오지 않는다면, 그건 AI 회사가 아니라 AI를 칠한 회사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거품은 언젠가 꺼지지만, 그 전에 누가 진짜였는지를 알아보는 눈을 키우는 게 우리 같은 관전자의 몫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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