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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스타트업끼리 크레딧 돌려쓰고 매출로 잡는다 — '리브스왑'이 드러낸 거품의 회계학

요즘 AI 스타트업 IR 자료를 보면 어딘가 이상한 점이 눈에 띕니다. 매출은 분기마다 두 배씩 뛰는데, 정작 현금흐름은 그만큼 따라오지 않습니다. 업계에서는 이 미스터리를 설명하는 단어가 하나 돌고 있습니다. 리브스왑(Revswap), 매출 맞교환입니다.

크레딧을 주고받으면 ‘매출’이 두 번 생긴다

구조는 단순합니다. A 스타트업이 B 스타트업에게 자사 서비스 크레딧 100만 달러어치를 줍니다. 그 대가로 B는 A에게 자기 서비스 크레딧 100만 달러어치를 줍니다. 현금은 단 한 푼도 오가지 않았는데, 양쪽 장부에는 각각 100만 달러의 매출이 찍힙니다.

벤처 캐피털 입장에서 매출 성장률은 가장 중요한 지표 중 하나입니다. ARR(연간반복매출)이 세 자릿수로 증가하면 다음 라운드 밸류에이션이 두세 배 뛰는 구조죠. 그런데 이 매출이 진짜 시장에서 검증된 수요가 아니라 스타트업끼리의 물물교환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누가 이걸 시작했을까

특정 회사를 지목하기는 어렵지만, 패턴은 분명합니다. AI 인프라 회사가 모델 회사에 컴퓨팅 크레딧을 주고, 모델 회사는 그 인프라 회사에 API 크레딧을 줍니다. 벡터DB, 에이전트 플랫폼, 데이터 라벨링 업체까지 비슷한 거래에 엮여 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문제는 이게 단순한 파트너십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회계적으로 매출을 인식하려면 ‘독립된 거래 당사자 간의 정상가격 거래’여야 하는데, 같은 VC가 양쪽에 투자한 회사끼리의 크레딧 교환은 그 기준을 만족하기 어렵습니다.

왜 지금 터졌나

투자자들이 슬슬 의심을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AI 스타트업들이 발표하는 매출과 클라우드 사업자들이 발표하는 실제 사용량 사이의 괴리가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한쪽에서는 “우리 ARR이 200%씩 늘었습니다"라고 하는데, 정작 인프라 단에서 잡히는 추론 트래픽은 그만큼 늘지 않는 거죠.

게다가 일부 회사들이 IPO 준비 과정에서 SEC 실사를 받으면서 이 거래 구조가 노출되기 시작했습니다. 비상장일 때는 ‘전략적 협업’으로 포장되던 것이 상장 직전에는 관계자 거래(related party transaction)로 분류되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닷컴 버블의 데자뷔

기시감이 드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2000년 닷컴 버블 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광고 스타트업끼리 광고 지면을 교환하고 그걸 매출로 잡았던 거죠. 당시에도 처음에는 “혁신적인 파트너십"으로 포장됐지만, 거품이 꺼지면서 회계 부정 스캔들로 번졌습니다.

물론 모든 크레딧 거래가 사기는 아닙니다. 정당한 협업도 분명히 있습니다. 다만 그 구분선이 흐려지고 있다는 게 문제입니다. 실제 가치가 오간 거래인지, 아니면 장부를 부풀리기 위한 의식인지 외부에서는 점점 더 구분하기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봐야 할 것

AI 스타트업 IR을 볼 때 이제는 매출 숫자만 봐서는 안 됩니다. 매출 대비 영업현금흐름 비율, 고객 집중도, 그리고 가능하다면 매출의 몇 퍼센트가 비현금 거래인지까지 따져봐야 합니다. 진짜 사업과 회계 마술을 구분하는 일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AI는 진짜 혁명입니다. 그러나 모든 혁명에는 거품이 끼고, 거품에는 항상 회계학이 함께 따라옵니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이 산업의 폭발적 성장인지, 아니면 서로의 장부를 부풀려주는 거대한 순환 거래인지 — 다음 분기 실적 시즌이 그 답을 조금씩 보여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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