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3분 소요

회의실에 AI 비서가 앉아있다 — 변호사들의 등골이 서늘해진 이유

요즘 줌 미팅에 들어가면 못 보던 손님이 하나 늘었습니다. “Otter.ai is now recording"이라는 작은 알림창입니다. 회의록을 알아서 정리해주는 AI 노트테이커인데요, 이게 평범한 회의에선 편리한 비서지만 변호사 사무실에 들어가는 순간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미국 변호사협회(ABA)와 주(州) 윤리위원회들이 잇따라 경고문을 내놓는 이유가 있습니다.

변호사-의뢰인 특권이 무엇이기에

법률에서 가장 강력한 방패 중 하나가 변호사-의뢰인 특권(attorney-client privilege)입니다. 의뢰인이 변호사에게 한 말은 법정에서 강제로 공개시킬 수 없다는 원칙인데요. 이게 있어야 의뢰인이 안심하고 사실을 다 털어놓을 수 있고, 변호사도 제대로 된 조언을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 특권이 의외로 깨지기 쉽다는 점입니다. 변호사-의뢰인 둘만의 대화가 아니라 제3자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특권이 포기(waived)된 것으로 간주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AI 노트테이커는 법적으로 어떤 존재일까요? 이게 지금 법조계가 머리 싸매고 있는 질문입니다.

AI 노트테이커는 제3자인가, 도구인가

ABA가 2024년 발표한 Formal Opinion 512에서 생성형 AI 사용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내놨고, 캘리포니아·플로리다·뉴욕 변호사회도 잇따라 의견을 추가했습니다. 핵심 우려는 세 가지입니다.

첫째, 데이터 보관 위치입니다. Otter, Fireflies, Fathom 같은 서비스는 녹음 파일과 전사 데이터를 자사 클라우드에 저장합니다. 이 데이터가 AI 학습에 사용되거나, 보안 사고로 유출되거나, 서비스 약관 변경으로 제3자에게 공유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의뢰인 정보가 변호사 사무실 밖으로 나가는 순간 비밀유지 의무 위반 소지가 생깁니다.

둘째, 증거개시(discovery) 리스크입니다. 소송이 걸렸을 때 상대측이 “당신 회의 녹취록 다 내놓으시오"라고 요구할 수 있습니다. AI가 만들어놓은 전사본은 일반 메모와 달리 단어 하나하나 그대로 남아있죠. 변호사가 의뢰인 앞에서 했던 어설픈 농담, 잠정적인 전략 논의가 그대로 증거로 제출될 수 있습니다.

셋째, 전사 오류 문제입니다. AI가 발음을 잘못 알아듣거나 화자를 헷갈리면 안 한 말이 기록에 남습니다. 나중에 이 기록을 근거로 분쟁이 벌어지면, 누가 무엇을 말했다고 입증하는 게 더 어려워집니다.

동의 없는 녹음의 함정

미국 일부 주는 양당사자 동의(two-party consent) 법을 갖고 있습니다. 캘리포니아, 플로리다, 일리노이 등 12개 주에서는 회의 참석자 전원의 동의 없이 녹음하면 형사처벌까지 받을 수 있습니다. AI 노트테이커가 자동으로 회의실에 들어와 녹음을 시작하는 순간, 누구도 명시적으로 동의하지 않았다면 그 자체로 법 위반입니다.

상대측 변호사가 줌 미팅에 자기 Otter 봇을 데리고 들어왔다면? 이걸 발견하고 즉시 퇴장시키지 않으면 우리 측 발언이 통째로 상대방 서버에 저장됩니다. 협상 자리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협상 전략이 그대로 노출되는 셈입니다.

그럼에도 쓰는 이유

이런 위험을 다 알면서도 법률 사무소들이 AI 도구를 못 버리는 건 단순합니다. 효율성이 압도적이거든요. 한 시간짜리 의뢰인 미팅 후 30분 동안 메모를 정리하던 일이 30초 만에 끝납니다. 청구 가능한 시간(billable hours)이 그만큼 늘어나니 로펌 입장에서는 포기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등장한 게 온프레미스(on-premise) 법률 전용 AI입니다. Harvey, Spellbook, CoCounsel 같은 서비스는 로펌 내부 서버에 데이터를 가두는 옵션을 제공합니다. 일반 SaaS형 노트테이커보다 비싸지만, 특권 보호와 보안 측면에서는 훨씬 안전합니다. 대형 로펌들은 이미 일반 도구 사용을 금지하고 자체 시스템으로 통일하는 추세입니다.

의뢰인이 더 똑똑해져야 할 때

흥미로운 건 이 문제가 변호사만의 고민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기업 법무팀과 외부 변호사가 미팅할 때, 의뢰인 측이 먼저 AI 봇을 데리고 들어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기 회사 내부 회의록 자동화를 위해서요. 그런데 이 행위 자체가 변호사-의뢰인 특권을 깨뜨릴 수 있다는 걸 모르는 분이 많습니다.

다음에 변호사와 화상 미팅을 잡으셨다면, 회의 시작 전에 한 번 화면을 둘러보세요. “AI Companion이 회의를 기록 중입니다” 같은 알림이 떠 있다면, 잠깐 멈추고 끄는 게 좋습니다. 편리함의 대가가 너무 클 수 있거든요. 당신의 비밀을 가장 잘 지켜야 하는 자리에, 가장 잘 기억하는 기계가 앉아있다는 건 생각보다 무서운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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