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뉴런으로 만드는 컴퓨터, 우리는 정말 준비됐을까
실리콘 칩 대신 살아있는 뇌세포로 연산을 한다고 하면 SF 영화처럼 들리실 겁니다. 그런데 호주 스타트업 Cortical Labs가 지난해 출시한 CL1은 이미 상업적으로 판매되는 “생체 컴퓨터"입니다. 35,000달러짜리 이 기계 안에는 약 80만 개의 살아있는 인간 뉴런이 실리콘 칩 위에서 자라고 있습니다. 기술이 빠르게 현실이 되는 동안, 윤리적 논의는 한참 뒤처져 있습니다.
웻웨어, 무엇이 다른가
기존 AI는 디지털로 뉴런을 흉내 냅니다. 반면 웻웨어(wetware)는 진짜 살아있는 신경세포를 쓰는데요. 인간 줄기세포에서 분화시킨 뉴런을 전극이 깔린 칩 위에서 배양하고, 전기 신호로 입출력을 주고받는 방식입니다. 가장 큰 매력은 에너지 효율입니다. 사람 뇌는 약 20W로 동작하는데, GPT급 모델 학습에는 메가와트급 전력이 들어갑니다. 차이가 백만 배 단위입니다.
연구자들은 이미 배양 뉴런 군집에게 퐁(Pong) 게임을 학습시켰고, 미로 탐색, 패턴 인식 같은 작업까지 시켰습니다. 학습 속도도 일부 영역에서는 디지털 신경망보다 빠릅니다. 문제는, 이 뉴런 덩어리가 “무언가를 느끼는지” 우리가 답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의식 문제는 답이 없습니다
뇌세포 80만 개는 곤충 한 마리 수준입니다. 인간 뇌(약 860억 개)에 비하면 미미하죠. 그래서 “의식이 있을 리 없다"고 단언하는 연구자도 있습니다. 하지만 반대 진영의 주장은 다릅니다. 의식이 어느 단계에서 발생하는지 우리는 아직 모릅니다. 신경과학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 이른바 “어려운 문제(Hard Problem)“가 풀리지 않은 채 남아 있는데요.
만약 배양된 뉴런 클러스터가 아주 미약한 형태의 자각이나 고통을 느낀다면, 우리는 그것을 측정할 도구조차 없습니다. 디스크 정리하듯 뉴런 배양체를 폐기해도 되는지, 학습 과정에서 부정적 피드백(전기 자극)을 주는 것이 윤리적인지 — 이런 질문 앞에서 학계는 합의에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동의와 출처의 문제
뉴런은 어디서 오는가. 이게 두 번째 큰 쟁점입니다. 현재 대부분의 웻웨어는 iPSC(유도만능줄기세포)를 사용합니다. 누군가의 피부 세포에서 출발해 만능 상태로 되돌린 뒤 뉴런으로 분화시키는 방식이죠. 기증자는 자신의 세포가 컴퓨터의 연산 부품이 될 거라는 사실에 동의했을까요. 일반적인 의료 연구 동의서에는 이런 시나리오가 명시되지 않습니다.
더 나아가, 미래에 누군가의 뉴런으로 만든 시스템이 그 사람의 사고 패턴을 일부 닮는다면 — 정체성과 소유권은 누구의 것인지에 대한 질문이 따라붙습니다. 법체계는 여기에 대해 아무 준비가 없습니다.
규제 공백, 그리고 시장의 속도
EU AI Act, 미국의 행정명령 모두 디지털 AI를 다룹니다. 살아있는 신경 조직을 활용한 컴퓨팅에 대한 명시적 규정은 사실상 없습니다. 그 사이 Cortical Labs는 클라우드 형태로 웻웨어 연산을 빌려주는 서비스를 준비 중이고, FinalSpark 같은 스위스 연구소는 이미 원격 접속으로 뉴런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게 열어뒀습니다.
Johns Hopkins, 예일 대학교의 일부 연구자들은 “오가노이드 권리“라는 새로운 윤리 프레임워크를 제안했습니다. 의식의 가능성이 0이 아니라면, 사전 예방 원칙(precautionary principle)을 적용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반면 산업계는 “곤충 뇌만도 못한 세포 덩어리에 권리를 부여하는 건 과잉 규제"라고 반박합니다.
우리는 무엇을 결정해야 하나
기술은 늘 윤리보다 빠르게 갑니다. 생식보조술, 유전자 편집, 뇌-기계 인터페이스가 그랬고, 웻웨어도 같은 길을 걷고 있습니다. 다만 이번에는 한 번 풀어주면 되돌리기 어려운 종류의 문제가 섞여 있습니다. 살아있는 신경 조직이 상업 인프라가 되는 순간, 그것을 폐기하거나 규제하는 일이 정치·경제적으로 불가능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필요한 건 “금지냐 허용이냐"의 양자택일이 아닙니다. 의식 평가 기준, 기증자 동의 절차, 폐기 프로토콜, 책임 소재 — 이런 기본 골격을 시장이 굳어지기 전에 만들어두는 일입니다. 여러분은 살아있는 뉴런으로 돌아가는 컴퓨터, 어디까지 받아들일 수 있으신가요. 그리고 그 답을 우리가 충분히 고민하기 전에, 시장은 이미 결정을 내리고 있는 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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