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에 베팅하는 봇, 예측시장을 뒤흔들다
예측시장 Polymarket에서 이상한 계정이 눈에 띕니다. 이름은 “Nothing Ever Happens”. 이 계정은 거의 모든 이벤트에서 “No"를 삽니다. 전쟁이 날 것인가? No. 특정 법안이 통과될 것인가? No. 유명인이 사임할 것인가? 역시 No. 마치 세상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확신하는 것처럼 행동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건, 이 전략이 꽤 잘 먹힌다는 겁니다.
예측시장에는 구조적으로 “Yes” 편향이 있다
이 봇이 파고드는 건 예측시장의 근본적인 비대칭입니다. 사람들은 “무언가 일어날 것”이라는 쪽에 과도하게 베팅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뉴스가 되는 건 언제나 “일어난 일"이지, “일어나지 않은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트럼프가 탄핵될 것인가, 특정 국가가 전쟁을 시작할 것인가, 어떤 CEO가 사임할 것인가. 이런 질문들이 예측시장에 올라올 때, 사람들은 뉴스에서 본 자극적인 헤드라인에 영향받아 “Yes"에 몰리는 경향을 보입니다. 하지만 현실에서 대부분의 극적인 시나리오는 실현되지 않습니다. 전쟁 위기는 외교로 봉합되고, 탄핵 절차는 정치적으로 무산되며, CEO는 자리를 지킵니다.
“No"는 지루하지만 수익률은 지루하지 않다
“Nothing Ever Happens” 봇의 전략은 놀라울 정도로 단순합니다. 시장에 올라오는 이벤트들 중 “Yes"의 가격이 과대평가된 것들을 골라 체계적으로 “No"를 매수합니다. 개별 베팅의 수익률은 작습니다. “No"가 85센트에 거래되고 있으면, 이벤트가 불발될 경우 15센트를 법니다. 하지만 핵심은 승률입니다.
예측시장에서 “이 사건이 일어날 확률 30%“로 거래되는 이벤트가 실제로는 10~15% 확률인 경우가 빈번합니다. 뉴스의 과열 보도, 참여자들의 확증 편향, 그리고 “맞추면 큰돈"이라는 도박 심리가 Yes 가격을 밀어올립니다. 이 간극이 바로 봇의 수익원입니다.
사실 이건 오래된 투자 원칙이다
월가에는 오래된 격언이 있습니다. “시장은 공포와 탐욕 사이를 오간다." “Nothing Ever Happens” 봇은 이걸 예측시장 버전으로 구현한 셈입니다. 사람들이 흥분해서 특정 이벤트에 몰려갈 때, 반대편에 조용히 서는 것. 이건 주식시장에서 공매도 펀드가 하는 일과 구조적으로 동일합니다.
실제로 Polymarket에서 활동하는 트레이더들 사이에서도 이 전략의 유효성은 이미 알려져 있습니다. 유튜브에서도 “The Only Polymarket Strategy You’ll Ever Need"라는 제목으로 비슷한 역발상 전략을 다룬 영상이 1만 9천 회 이상 조회되며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핵심 메시지는 같습니다. 군중의 반대편에 서라.
봇이 던지는 더 큰 질문
이 봇이 흥미로운 건 수익성 때문만이 아닙니다. 예측시장의 정보 효율성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기 때문입니다.
예측시장은 “군중의 지혜"가 작동하는 공간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참여할수록 가격이 실제 확률에 수렴한다는 거죠. 그런데 체계적으로 “No"만 사는 단순한 알고리즘이 꾸준히 수익을 낸다면, 이 시장은 정말 효율적인 걸까요?
한 가지 가능성은 예측시장이 아직 충분히 성숙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전통 금융시장에서는 이런 구조적 편향이 발견되면 차익거래자들이 몰려들어 금세 사라집니다. 하지만 Polymarket 같은 크립토 기반 예측시장은 참여자 풀이 작고, 기관 투자자의 참여가 제한적입니다. 그래서 이런 단순한 전략이 아직 먹히는 것일 수 있습니다.
역발상의 한계도 분명하다
물론 이 전략에 치명적인 약점이 있습니다. 진짜 큰 사건이 터지면 한 번에 크게 잃습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개전 직전, “전쟁이 일어날 것인가"에 No를 베팅했다면 전액을 날렸을 겁니다. 코로나 팬데믹 선언, 실리콘밸리은행 파산 같은 이벤트도 마찬가지입니다.
“Nothing Ever Happens"는 대부분의 시간에 조금씩 벌고, 가끔 크게 잃는 구조입니다. 이건 옵션 매도 전략과 똑같은 리스크 프로파일입니다. 겉으로는 안정적으로 보이지만, 테일 리스크를 안고 있다는 뜻이죠. 결국 봇의 장기 생존 여부는 Yes 편향에서 얻는 소소한 수익이, 가끔 터지는 블랙스완 손실을 상쇄하고도 남는지에 달려 있습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물론 틀린 명제입니다. 세상에는 늘 무언가가 일어납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는 덜 일어난다는 건 꽤 자주 맞는 명제입니다. 이 봇은 결국 인간의 인지 편향 자체에 베팅하고 있는 셈인데요. 여러분이라면 예측시장에서 Yes와 No 중 어느 쪽에 서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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