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인프라 3분 소요

스위스는 25Gbps 인터넷을 쓴다는데, 미국은 왜 아직도 이 모양일까

스위스 통신사 Init7이 가정용 25Gbps 대칭 광섬유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습니다. 월 요금은 약 64달러입니다. 같은 시각, 미국 소비자 상당수는 100Mbps도 안 되는 속도에 월 80달러 이상을 내고 있습니다. 250배 느린 인터넷에 더 비싼 돈을 내는 셈인데요. 대체 뭐가 잘못된 걸까요.

숫자가 말해주는 현실

스위스의 Init7 Fiber7 서비스는 업로드와 다운로드 모두 25Gbps를 제공합니다. 대칭형이라는 점이 핵심입니다. 영상을 올리든, 클라우드에 백업을 하든, 내려받는 것만큼 빠릅니다.

미국의 사정은 다릅니다. FCC 기준으로 미국의 ‘브로드밴드’ 정의는 오랫동안 하향 25Mbps, 상향 3Mbps였습니다. 2024년에야 겨우 100Mbps/20Mbps로 올렸죠. 스위스가 기가가 아니라 수십 기가 단위로 넘어가는 동안, 미국은 메가비트 단위의 기준선을 올리는 데 수년이 걸린 겁니다.

가격도 문제입니다. 미국 주요 ISP인 Comcast, AT&T, Spectrum의 기가비트 플랜은 대체로 월 70~100달러 수준입니다. 그마저도 실제 속도가 광고 속도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고요. 약정, 장비 임대료, 데이터 캡 같은 숨겨진 비용도 있습니다.

‘자유시장’이라는 이름의 독점

미국 브로드밴드 시장이 느리고 비싼 이유를 물으면, 흔히 돌아오는 답이 있습니다. 미국은 넓으니까. 인구밀도가 낮으니까. 하지만 이건 절반의 진실에 불과합니다.

진짜 문제는 경쟁이 없다는 겁니다. 미국 가구의 약 절반은 브로드밴드 사업자를 하나밖에 선택할 수 없습니다. 사실상 지역 독점 구조입니다. Comcast가 깔려 있는 동네에서 다른 선택지가 없으면, Comcast는 굳이 속도를 올리거나 가격을 내릴 이유가 없습니다.

이 독점은 우연히 생긴 게 아닙니다. 수십 년에 걸친 프랜차이즈 계약과 로비의 결과입니다. 대형 ISP들은 지방정부와 독점 혹은 과점 계약을 맺고, 동시에 경쟁자의 시장 진입을 막는 법안을 밀어붙였습니다. 미국 20개 이상의 주에서 지자체가 자체 브로드밴드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을 제한하는 법률이 존재합니다. 시장의 자유가 아니라, 기존 사업자의 자유를 보호하는 구조인 셈이죠.

스위스는 뭐가 달랐나

스위스가 마법을 부린 건 아닙니다. 핵심은 인프라 개방 정책입니다.

스위스의 국영 통신사 Swisscom이 전국에 광섬유를 깔았고, 이 네트워크를 다른 사업자에게도 개방했습니다. Init7 같은 소규모 사업자도 이 인프라 위에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인프라를 까는 비용은 한 번이지만, 그 위에서 경쟁하는 사업자는 여럿인 구조입니다.

유럽 여러 나라가 비슷한 모델을 씁니다. 물리적 네트워크(도로, 전력선, 상하수도처럼)는 공공재 성격의 인프라로 보고, 그 위의 서비스 경쟁은 민간에 맡기는 방식입니다. 도로를 한 회사가 독점하면 그 위를 달리는 택시, 버스, 트럭 회사 모두가 불합리한 통행료를 내야 하는 것과 같은 논리죠.

미국은 반대입니다. 인프라 자체를 민간 기업이 소유하고, 그 위의 서비스까지 같은 기업이 제공합니다. 도로를 깐 회사가 그 도로 위에서 운송 사업까지 독점하는 격입니다.

구글조차 포기한 시장

이 구조가 얼마나 견고한지는 Google Fiber의 사례가 잘 보여줍니다. 세계에서 가장 자본이 풍부한 기업 중 하나인 구글도 미국 전역에 광섬유를 깔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크게 축소했습니다.

이유는 기술이 아니었습니다. 기존 ISP들이 전봇대 접근권 분쟁, 인허가 지연, 소송 등으로 진입을 막았기 때문입니다. 전봇대 하나를 쓰는 데도 기존 사업자의 동의가 필요한 구조에서, 신규 사업자는 한 블록을 까는 데 수개월을 허비합니다.

자유시장이라면 구글 같은 강력한 경쟁자가 들어와서 기존 사업자를 긴장시켜야 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였습니다. 시장이 자유로운 게 아니라, 기존 사업자가 시장을 잠가놓은 것입니다.

느린 인터넷은 경제 문제다

이건 단순히 넷플릭스 버퍼링 문제가 아닙니다. 브로드밴드 인프라는 21세기의 도로이자 전력망입니다.

원격 근무, 원격 의료, 온라인 교육, 클라우드 컴퓨팅 — 모두 안정적이고 빠른 인터넷이 전제입니다. 미국 시골 지역은 여전히 인터넷 접근 자체가 불안정한 곳이 많습니다. 미국 정부가 브로드밴드 확충에 수백억 달러의 보조금을 쏟아부었지만, 상당 부분이 기존 대형 ISP의 주머니로 들어갔을 뿐 실질적 개선은 더뎠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습니다.

스위스의 25Gbps는 단순한 자랑이 아닙니다. 인프라에 대한 접근 방식의 차이가 만들어낸 결과입니다.


스위스와 미국의 인터넷 격차는 기술력의 차이가 아닙니다. 인터넷 인프라를 공공재로 볼 것인가, 사유재로 볼 것인가의 차이입니다. 미국이 자유시장을 내세우는 동안, 정작 시장에서 소비자의 선택권은 사라졌습니다. 진짜 자유시장이라면, 소비자가 25Gbps를 64달러에 쓸 수 있어야 하는 거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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