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주정부 AI 법을 밀어붙이다 — 미국 AI 규제의 내전이 시작됐습니다
미국에서 AI 규제를 둘러싼 진짜 전쟁이 시작됐습니다. 상대는 중국이 아닙니다. 연방정부와 주정부, 같은 나라 안에서 벌어지는 내전입니다. 2026년 3월, 백악관이 내놓은 국가 AI 프레임워크의 핵심은 단 하나입니다. 주(州)가 만든 AI 법을 연방법으로 덮어쓰겠다는 것입니다.
연방 선점이란 무엇인가
연방 선점(Federal Preemption)은 미국 헌법의 오래된 원칙입니다. 연방법과 주법이 충돌하면 연방법이 이긴다는 뜻입니다. 교통법규나 금융규제에서는 익숙한 개념이지만, AI 분야에 이걸 들이밀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현재 미국은 주마다 AI 규제가 제각각입니다. 캘리포니아는 AI 안전법안을 추진해왔고, 콜로라도는 고위험 AI 시스템에 대한 규제를 시행 중입니다. 일리노이, 텍사스, 뉴욕도 각자의 법안을 만들어왔습니다. 트럼프 행정부의 메시지는 명확합니다. 이 모든 걸 하나로 통일하겠다는 겁니다.
백악관 AI 프레임워크의 속내
2026년 3월 셋째 주, 백악관은 국가 AI 프레임워크를 공개했습니다. 공식 명칭에는 혁신 촉진과 표현의 자유 같은 단어가 들어가 있지만, 업계가 주목하는 건 딱 두 가지입니다.
첫째, 주정부의 독자적 AI 규제를 연방법으로 선점하겠다는 조항입니다. AI 모델의 훈련 데이터, 안전 기준, 배포 조건 등에 대해 주정부가 별도 규제를 만들 수 없게 됩니다. 둘째, AI 학습에 사용되는 데이터의 공정 이용(Fair Use) 범위를 연방 차원에서 넓히겠다는 방향입니다. 저작권 문제로 주법원마다 다른 판결이 나오는 혼란을 정리하겠다는 명분입니다.
이 프레임워크가 법제화되면, 캘리포니아가 아무리 강력한 AI 안전법을 만들어도 연방법 앞에서 무력해집니다.
빅테크 11억 달러의 행방
이 흐름의 배경에는 빅테크의 대규모 로비가 있습니다. 3월 말 공개된 분석에 따르면, 주요 빅테크 기업들이 주정부 AI 규제를 막기 위해 투입한 금액이 11억 달러에 달합니다. 이 돈은 연방 의회 로비, 주의회 캠페인, 산업 단체 지원 등에 쓰였습니다.
빅테크의 논리는 이렇습니다. 50개 주가 각각 다른 AI 규제를 만들면, 기업은 50개의 서로 다른 법을 동시에 지켜야 합니다. 혁신은 멈추고, 미국의 AI 경쟁력은 떨어진다는 겁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반대편의 우려도 만만치 않습니다. 연방 규제가 주정부 규제보다 느슨해지면 어떡하느냐는 겁니다. 실제로 트럼프 행정부의 AI 정책 기조는 규제 최소화입니다. 연방법이 약하면, 주정부 법까지 없어진 자리는 그냥 규제 공백이 됩니다.
주정부는 왜 반발하는가
주정부의 입장은 단순합니다. AI 피해는 지역에서 발생한다는 겁니다.
채용 AI가 특정 인종을 차별하면, 피해자는 그 주의 시민입니다. 의료 AI가 오진을 내리면, 환자는 그 주의 병원에 있습니다. 자율주행차 사고가 나면, 도로는 그 주의 관할입니다. 연방정부가 포괄적이고 느슨한 기준 하나로 이 모든 걸 커버할 수 있느냐는 질문은 당연합니다.
캘리포니아, 뉴욕 등 민주당 주지사들은 이미 반발 의사를 밝혀왔습니다. 법적 다툼으로 번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미국 역사에서 연방 선점을 둘러싼 소송은 수년에서 수십 년 걸리는 일도 드물지 않습니다.
한국에 던지는 시사점
미국의 이 싸움은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닙니다. 한국도 AI 기본법을 추진 중이고, 글로벌 AI 기업의 서비스를 매일 쓰는 나라입니다.
미국이 연방 차원에서 AI 규제를 약하게 가져가면, 미국 빅테크 기업의 AI 서비스는 한국 시장에도 그 기준 그대로 들어올 수 있습니다. 유럽의 AI Act가 강력한 규제로 방향을 잡은 것과 정반대의 흐름입니다. 글로벌 AI 규제는 지금 두 갈래로 갈라지고 있고, 한국은 그 사이에서 자기 포지션을 정해야 합니다.
미국 AI 규제의 진짜 변수는 기술이 아니라 정치였습니다. 연방 선점이 실현되면 미국 AI 산업의 규칙이 근본적으로 바뀝니다. 질문은 하나입니다. 규제가 없는 혁신과, 느리더라도 안전장치가 있는 혁신 중에서 어느 쪽이 결국 더 오래갈까요?